사랑과 영혼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라는 책에 보면,“사랑에 대하여” 라는 글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밑그림으로 진정한 사랑은 아픔이다 라는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랑이 그대를 부르거든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힘들고 가파를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감싸 안거든 그에게 온몸을 내맡기라. 비록 그 날개 속에 숨은 칼이 그대를 상처 입힐지라도. 사랑이 그대에게 말할 때는 그 말을 신뢰하라. 비록 북풍이 정원을 폐허로 만들 듯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의 꿈을 뒤흔들어 놓을지라도. 사랑은 그대에게 영광의 관을 씌워 주지만, 또한 그대를 십자가에 못 박히기도 하는 것이기에. 사랑은 그대를 성장하게 하지만, 또한 그대를 꺾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기에.”

    사랑과 아픔은 동전의 두 면과 같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아픔을 동반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픔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주님의 사랑은 십자가의 아픔을 동반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이 부르면 그 속에 칼이 숨겨져 있어도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헬라문화에서 사랑이라는 말은 그 질에 따라 적어도 네 가지로 다르게 표현 합니다. 예를 들어 “아가페” 라는 말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알고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은 부족한 번역입니다. 아픔과 상처가 있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서) 지브란이 바로 보고 있는 십자가가 있는 사랑입니다. 십자가 없이도 하나님은 사랑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픔의 사랑을 선택하신 것이지요.

    내가 아무개를 사랑하고 그를 도와주었던 것이 도리어 아픔으로 다가 온다면, 기뻐하십시오. 그것은 질이 다른 사랑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왔다가 오는 아픔때문에 힘들어 하신다면, 그것은 내가 아픔의 사랑을 한 것이 아니고 뭔가를 바라는 댓가의 사랑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저를 어떻게 도와주었는데, 지가 나에게 그럴 수 있어?” 섭섭함으로 다가 온다면, 그것은 아픔의 사랑/상처가 있는 사랑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나도 은연중에 그에게서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픔의 사랑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사랑한 것 때문에 상처와 아픔이 있다면, 그것을 아름답게 간직하십시오. 정호승 씨의 시처럼, “상처 많은 꽃잎(영혼)들이 (하나님 앞에) 가장 향기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