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시인의 “나그네” 라는 시의 한 구절을 보면, 우리의 인생을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귀에 익혀진 최희준 씨의 “하숙생”이라는 노래도 인생을 나그네로 표현합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이 두개의 노래 말 속에는 매우 낭만적이고 유유자적하는 나그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국어 사전에도 나그네란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위 세 경우 모두가 나그네란 갈 곳을 모르고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이라는 점이 뭔가 가장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성경도 인생을 나그네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새로운 땅으로 이민을 온 아브라함은 창세기 23:4에서 “나는 이곳에서 나그네요 외국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다윗도 “우리는 주 앞에서 우리 조상들처럼 외국인이나 나그네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상29:15) 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 살다간 영웅들을 소개하며, 그들은 다 나그네의 삶을 살다간 사람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나그네와 세상이 말하는 나그네의 차이가 있습니다. 다같이 인생을 나그네길 이라고 표현하지만, 어디서 와서 어디로 돌아가야 할 본향을 향해 가는 나그네와, 그저 갈 곳을 모르고 정처 없이 떠도는 세상 나그네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의 나그네 길은 백년설 선생님의 “나그네 설움” 이라는 노래 말처럼 서러움입니다. 고달픕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발길/지나온 자욱 마다 눈물 고였다/선창가 고동소리 옛 님이 그리워도/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한마디로 외롭고 서럽습니다. 그러나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아니라, 본향(천국)가는 나그네임을 노래하는 김희보 씨의 찬양시를 보십시오. “인생의 거친 들에서 하룻밤 머물 때/환란의 궂은 비바람 모질게 불어도/이세상 지나는 동안에  괴로움이 심하나/그 괴롬 인하여 천국 보이고/늘 항상 기쁜 찬송 못 부르나 주 예수님 은혜로 이끄시네/이 세상 나그네 길을 지나는 순례자/인생의 거친 들에서 하룻밤 머물고/천국의 순례자 본향을 향하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방황하는 나그네가 아니라, 우리의 천국 집 본향을 향해가는 나그네/순례자입니다. 그 본향 길에서 오늘 내가 걸어야 하는 부분이 가시밭길 고난의 길이라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꿈에도 그리는 우리의 본향 가는 길 위에 지나가는 한 조각일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