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누가복음을 중심으로 사복음서 대조표를 놓고 보면,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유월절 만찬을 드시며, 그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수업”을 하십니다. 제가 가진 그리스어와 영어대조 성경은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22:24 이후)을 “A Final Discourse” of Jesus, 곧 예수님의 마지막 강화(수업)라고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누가 더 높으냐? 라고 서로 다투는 제자들을 앉혀놓고 그 마지막 만찬 밥상머리에서 마지막 수업을 하십니다. “누가 큰 사람이냐? 밥상에 앉은 사람이냐? 아니면, 시중드는 사람이냐? 나는 너희 중에 시중드는 이로 있느니라.” 자신은 종으로 섬기는 (원문을 정확히 번역하면) “the one who serves,” “섬기는 이” 곧 “시중드는 자” 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밥상 상좌에 앉아서 섬김을 받는 사람이 크고 높은 사람입니다.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의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반대이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큰자가 되고자 하면 (또 자신이 더 큰 자라고 생각한다면),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10:43-44). 이게 예수님의 마지막 수업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온 목적은 십자가에서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로 내어주는 섬김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섬김은 그야말로 몸 전체를 드림이라고 정의하시며, 그 정의 자체가 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내 안에서 주인이 된 또 하나의 마음은 종의 모습으로서의 섬김입니다. 섬김은 그리스도인의 표(mark)이며, 예수님처럼 종의 자리(standing in the place of a servant)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모습이 섬김의 공동체이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를 섬겨주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나이와 직분에 관계없이, 서로가 서로를 높여 주고 섬겨주는 섬김의 공동체! 서로가 서로에게 종이 되는 관계 - 무슨 일이든지 섬김의 일이 있으면 기쁘고 즐거운 교회! 지역사회를 위한 일이든지, 성도간에 섬김이 일이라든지, 무슨 일이든 간에, 내가 주님처럼의 삶, 곧 종/섬김의 자리에 서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교인들이 모인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서로 낮은 자의 자리에 서려는 섬김 때문에 잡음이 없는 교회 말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 6:2). 주인과 종 누가 짐을 집니까? 종이 짐을 집니다. 그러면 “서로 짐을 지라”는 말은 무슨 말씀인가요? 서로가 서로에게 종이 되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기준과 가치관을 초월하는 높은 인격이며,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주인이 된 마음이며, “Just like Jesus” 곧 그리스도처럼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표지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종이 되어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이땅에서 완성해가라는 말씀이 그분의 마지막 수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