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가장 큰 은혜는 죄를 용서하시는 은총입니다. 이 하나님의 용서는 또한 용서하는 삶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삶에서 화해와 용서가 왜 어려운 걸까요? 왜 우리는 땅과 하늘을 매는 “매임병”에서 헤어나기가 그렇게도 힘이 들까요? 어떻게 매임병에서 해방되는 용서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옳다고 하는 내가 먼저 상대에게 손을 내밀 때 용서가 가능합니다. 내게 잘못이 없는 것이 확실한 대도 내가 먼저 자비의 손을 내밀 때에 용서가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잘못한 인간쪽에서 용서를 구했기 때문에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손을 내밀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수건을 가져다 허리에 두르고 대야를 들고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때묻은 발을 하나씩 차례대로 씻겨 나가십니다. 하루 종일 샌들을 신었기에 발은 모래와 먼지로 더러워졌으며, 관습에도 그러하듯이 제자들은 당연히 식사 전에 발을 씻었어야 합니다. 더구나 유월절 만찬 앞에서, 왜 제자들은 발을 씻지 않았을까요? 당시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의 일이었는데, 그동안 누가 큰 자인가를 두고 서로 키재기를 했던 그들이 그 상황에서, “나는 너희 중에 꼴찌다” 라고 자청하듯이 동료들의 발을 씻기는 제자가 없습니다. 누가 씻어줄 것인가 서로 눈치만 보다가 아예 발을 씻지도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지금 수건과 대야를 드신 분은 우주의 왕이시며, 하늘의 별들과 아름다운 산과 들을 만드신 그 손가락이 지금 제자들의 더러운 발가락을 문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이 씻기고 있는 이 발들의 미래를 분명 알고 계셨습니다. 이튼날 로마의 번쩍이는 칼 앞에 숨을 곳을 찾아 삼십육계 줄행랑 칠 발들입니다. 그 중에 유다의 발은 그날 밤 바로 주님을 팔러 가는 발이라는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죄를 짓기도 전에 용서하시며, 구하기도 전에 자비를 먼저 베풀고 계신 것입니다.

매임에서 헤어나오는 용서가 어려운 것은, 서로 옳다고 줄다리기를 하기때문 입니다. “나는 잘못이 없어. 잘못한 쪽은 내가 아니고 저쪽이란 말이야!” 라고 말하는 것 그것은 매임병의 중증 증세입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과연 내 잘못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임병에서 헤어나와 하늘과 땅이 풀리는 은총의 역사는 잘못이 없다는 쪽에서, 옳다고 하는 쪽에 손을 먼저 내밀 때에 가능합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서로의 매임병에서 화해의 가교를 잇는 짐이 약자의 몫이 아니라 옳다고 주장하는 강자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잘못 없는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 때에 화해의 역사는 시작되며, 하늘과 땅을 하나로, 땅과 하늘을 잇는 통로가 열리게 됩니다. 알아야 합니다. 맥스 루케이도의 말처럼, “관계가 성공하는 것은 죄 있는 쪽이 벌을 받아서가 아니라, 죄 없는 쪽에서 베푸는 긍휼 때문이다.” 매임에서 해방되는 길은 “예수님처럼” (Just like Jesus) 내가 먼저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은혜의 대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