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소설가 조세희가 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작품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산업화로 인해 소외된 사람들을 왜소한 불구의 난장이로 상징화시키면서 그들의 아픔과 시대의 현실을 고발하는 이 작품에서 의미심장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대학 입학시험을 앞둔 마지막 수업 시간인데 수학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어느 쪽 아이가 얼굴을 씻을 거라고 생각 하는가?” 한 학생이 대답합니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씻을 것입니다.” (나는 이 대답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선생님이 대답합니다. “틀렸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를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씻을 것인가?)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자기의 얼굴이 더러운 줄 알고 씻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유대인의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우리의 모습을 찾고 가꾸어 가는데 많은 교훈을 줍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에게는 그을음이 묻은 아이의 얼굴이 자신을 보는 거울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계속해서 선생님이 다시 묻습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어느 쪽 아이가 얼굴을 씻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똑같은 질문을 선생님이 다시 하고 있습니다. 한 학생이 얼른 일어나 대답합니다. “저희들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교사가 다시 대답합니다. “그 답은 틀렸다.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라고 선생이 대답을 합니다. 굴뚝 청소를 하고 나온 두 아이는 서로가 서로를 보며 자신의 더러움을 씻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굴뚝 속의 죄인입니다.” 모두가 더러움 투성이며 일그러졌는데 (롬3:23) 누가 누구를 보고 더럽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자신은 깨끗하고 상대방은 더러운 죄인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상대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의 허물을 씻어주고 덮어주며, 그것을 보고 자신을 씻는 거울로 주셨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은 내가 나를 보는 거울입니다. 그래서 이웃 동료의 모습 속에 본받고/버려야 할 내가 있고, 또 내 안에 너가 찾아야 할 모습이 있습니다.